최근에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비교적 생소한 캄보디아라는 국가로의 여행을 택했을 때 주변 지인들로부터 하필 캄보디아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캄보디아에는 대표적으로 12세기 크메르 제국 시기에 건설되어 현재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사원, 앙코르 와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저의 발길을 이끈 것은 따로 있었습니다. 1970년대, 캄보디아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끔찍한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해당 현장에 방문하여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글로써 표현하고 공유하고자 합니다.
뚜얼슬랭 학살 박물관은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곳에서만 불과 4년동안 약 2만명이 고문과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캄보디아 전역에서 학살과 기아, 질병 등으로 죽은 캄보디아 국민은 200만 ~ 300만명에 달합니다. 이는 캄보디아 국민의 1/4에 해당되는 말도 안되는 수치입니다. 이 시기 캄보디아 전역은 킬링필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습니다.
뚜얼슬랭 학살 박물관은 본래 고등학교였습니다. 뚜얼슬랭은 그 옆에 있던 초등학교의 이름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수도 시내 한 가운데에 위치한 학교에서 학살과 고문을 자행할 수 있었는지는 후에 서술하도록 하겠습니다.
학살과 고문은 비극의 자극적인 결과물입니다. 일의 서사를 살펴보지 않고 자극에 이끌려 희생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고문을 받았나, 어떻게 죽어나갔나만 궁금해한다면 끔찍한 피해를 받은 희생자들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행위 밖에 안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들을 같은 사람이 사람에게 행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전말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크메르루즈와 폴 포트
캄보디아의 이전 국명은 민주 캄푸치아입니다. 캄푸치아 공산당에 소속의 무장 군인단체 크메르루즈와 그들의 리더인 폴 포트가 캄보디아를 비극으로 이끈 주인공입니다.
폴 포트는 캄보디아의 상류층의 자녀로 태어나, 과거 본인들을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로 유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주의 기반의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고, 이에 크게 동감하여 캄보디아로 귀국합니다. 하지만 그의 공산주의는 당연하게도 한참 뒤틀리고 어긋난 것 이었습니다(시작은 어땠을지 몰라도.) 당시 베트남은 통일 전쟁 중이었습니다. 사회주의 진영 베트콩의 보급 운송로인 호치민루트는 캄보디아의 국토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민주주의 진영의 남베트남을 지지하던 미군은 호치민루트를 차단하기 위해 캄보디아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때 캄보디아 국토에 터진 폭탄은 세계 2차대전 때 사용된 폭탄보다 많은 양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캄보디아에는 반미 감정이 일었습니다. 폴 포트는 이러한 국민 정서를 이용해 친미 정권인 론 놀 정권과 대립하였고, 결국에는 캄보디아를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폴 포트는 자본주의가 절대악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마오쩌둥의 열렬한 추종자였습니다. 중국의 대약진 운동을 모방하고 그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캄보디아를 본인 만의 이상적인 공산주의로 물들일 계획이었습니다. 자본가들을 모두 숙청하고 캄보디아 국민 모두를 농민으로 만드는 중의 문화대혁명 식의, 그보다 훨씬 더 미친 이상을 펼쳤습니다. 그가 정권을 장악하고 우선으로 진행한 일은 도시민들을 모두 시골로 내쫓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수도 프놈펜에 미군의 폭격이 예고되어 있다고 시민들에게 거짓 뉴스를 퍼트려 공포심에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강제 이주를 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이주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폭행하고, 심하게 저항하는 이는 처형까지 집행했습니다. 그는 시골에 집단 인민 농장을 만들어 이주 시민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는 '안경을 쓴 사람은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부는 어떠한 형태로든 돈을 버는 방법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즉, 자본가다', '손이 고운 사람은 노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상위 계층의 사람이다, 즉, 자본가다' 이런 식의 미개한 추론으로 자본가를 색출했습니다. 차라리 이는 합리적인 색출 기준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펜을 가지고 있다, 시계를 볼줄 안다, 책을 똑바로 들줄 안다, 배가 나왔다 등의 이유로 처형 당하거나 수용소에 강제 수용된 이들도 있었습니다. 정작 폴 포트 본인은 그 어려운 시절에 프랑스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최상위 기득권의 자본가 집안 출신이라는 사실은 몹시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