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국가의 구성원의 일부로서 부를 재분배야할 의무가 있는가? 우리는 그들에게 더 많은 돈을 징수하고, 그 돈으로 국가 살림에 보태야 할까?
국가는 부자들에게 더 높은 세금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가? 앞서 살펴본 공리주의 논리라면 부의 재분배에 찬성할 것이다. 상위 계층의 부를 걷어 다수에게 분배를 한다면, 비교적 소수인 부자들의 공리는 낮아지겠지만 그 외의 다수의 공리는 높아질 것이다. 물론 공리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 중 에서도 이러한 로빈후드 식 각본에 반박을 가하는 사람도 있다. 고소득에 따라 부과되는 높은 세율은 생산성을 떨어뜨릴 것이고, 그로 인한 전체 경제 성장이 줄어들어서 궁극적으로는 공리를 감소시킬 것이라는 생각이다. 반면에 공리와는 무관한 반박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번 장에서 이야기하는 자유지상주의 논리에 대한 관점이다.
최소국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최소국가를 지향한다. 최소국가란 계약을 집행하고, 개인을 보호하며, 평화를 유지하는 역할만 하는 그들의 이상국가를 말한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산이 아니라면, 그것에 대해 국가가 관여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 부자들의 자발적 동의로 인한 재분배가 아닌 이상, 국가가 부자들에게 더 높은 수치의 과세를 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이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현대 국가가 시행하는 정책과 법의 이념 중, 아래 세가지에 반대한다.
1. 소득과 부의 재분배: 지금까지 위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2. 온정주의: 사람을 다치지 않게 보호를 강제하는 법에 반대한다. 안전벨트 착용이나 오토바이 주행 시 헬멧 착용 등을 법으로써 강요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을 국가가 침해한다는 주장이다.
3. 도덕법: 사회가 법과 정책 같은 장치를 이용하여 미덕을 권장하는 것에 반대한다. 예로써, 성인들의 합의로 인한 매춘 등을 찬성한다.
자유시장 철학
자유지상주의 관점의 자유시장 철학에서 국가의 역할은 계약을 집행하고 사람들을 무력과 사기와 절도로부터 보호하는 최소 국가만이 정당한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 더 나아가게 되면 개인에게 강요하는 행위가 되며,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되어 정당화 될 수 없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면 부자가 강요받는 꼴이 된다. 그들은 빈부 격차가 결코 정의롭지 못한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버트 노직이라는 자유지상주의 철학자는 분배 정의가 구현되려면 최소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한다고 한다. 하나는 초기 소유물에 구현된 정의, 하나는 소유물 이전에 구현된 정의이다.
첫번째 조건은 자원이 합법적인 소유물인가를 판단한다. 예로, 장물을 팔아 얻은 소득은 정당하지 않다. 두번째 조건은 자유로운 교환 혹은 자발적으로 건네준 선물로 돈을 벌었는가를 묻는다. 외압없이 성립된 교환에서 분배의 결과가 어떻든 그 교환은 정당하다. 노직은 재분배를 반대하며 아래와 같은 상황을 예시로 들었다.
마이클 조던의 돈
마이클 조던은 NBA의 슈퍼스타이다. 그는 경기 티켓을 가장 많이 파는 선수이고, 많은 관중들은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동료 선수들의 몇배에서 몇십배는 상회하는 연봉을 받는다. 이러한 현상은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는 이들에게는 공정한 재분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분배 방식에서 정작 부당함을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관중도 자발적으로 경기 티켓을 구매했고, 농구에 관심없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아무런 영향이 끼치지 않았으며, 조던 역시 본인의 의지로 경기를 뛰고 돈을 벌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 분배 정의 이론을 적용하면 두 가지 문제점을 안기게 된다는 자유지상주의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 자유시장에 지속적으로 간섭하여 사람들의 선택으로 도출된 결과를 인위적으로 바꾼다. 둘째, 조던이 마땅히 취해야 할 권리를 침해한다. 즉, 특정화된 과세는 피해보는 이가 없는 경우라면, 자유롭게 형성된 거래의 결과를 임의적으로 변경시키는 행위이다. 그리고 조던에게 기부금을 억지로 내게하는 꼴이다.
수입에 세금을 부과하는 행위는 강제 노역과 다를 바가 없다. 국가가 수입의 30%를 내놓으라는 대신에 내 시간의 30%를 내놓으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런식으로 노동을 강요할 수 있다면, 본질적으로는 정부가 나의 부분적인 소유권도 주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는가?
1993년 조던이 은퇴를 선언하자, 시카고 불스 팬들은 큰 상실감을 느꼈다. 이후 결국엔 은퇴를 번복하고 코트로 돌아가 세번의 우승 트로피를 시카고 불스에게 안기긴 했지만. 여기서 한 가지 가정을 한다. 연방 의회가 시민들의 상실감을 덜어주기 위해 조던에게 다음 시즌 3분의 1을 더 뛰도록 하는 법을 통과 시켰다고 가정해보자. 이를 두고 정당한 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강제로 경기를 뛰게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면, 수입에 과세를 하는 것 또한 정당하지 않은 행위라는 논리를 펼친다. 과세로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논리에 반박을 하지만 다음과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의 논박에 막힌다.
1. 과세와 강제 노동의 질적 차이를 간과 할 수 없음. 만약 세금을 많이 내기 싫다면, 본인의 노동을 조절하여 언제든 덜 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지만, 강제 노동은 그렇지 않다.
=> 국가가 그러한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당한 행위이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집에는 1000달러 짜리 TV와 현금 1000달러가 있다. 도둑이 둘 중 하나만 훔쳐간다고 가정했을 때, 당신은 차라리 TV를 도난당하는 편이 낫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현금으로는 TV를 새로 살지 말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든 현금이든 도둑질은 나쁘다는 것이 골자이지, TV를 훔쳐간 도둑이 현금을 훔쳐간 도둑보단 낫다라는 주장은 논점을 벗어난다.
2.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이 더 필요하다.
=> 자발적인 기부만이 정당하지 기부를 강요할 수는 없다.
투석 치료를 받는 환자에게 건강한 내 콩팥을 한 쪽만 있어도 살 수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환자에게 더 절실히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가가 강제 이식 수술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겠는가?
3. 조던은 혼자 농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성공은 팀원, 아나운서, 경기장 청소부, 심판 등 타인에게 빚을 진 셈이다. 즉, 우리는 사회를 살아가며 어떠한 형태로든 남에게 은혜를 입는다. 따라서 나의 수입은 그들에게 빚을 진 것이며, 과세로써 갚아야한다.
=> 팀원, 아나운서, 경기장 청소부, 심판 등 그들은 조던보다는 적은 돈을 받겠지만, 업무에 대한 보상으로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으며, 이는 본인이 수락한 댓가이다. 그리고 조던이 그들에게 빚을 졌다 한들 농구 경기와 무관한 일에 사용될 세금을 과세하는 것은 말이 맞지 않는다.
4. 조던은 민주사회 시민으로서 조세법 제정에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사회에 속하기 때문에 법에 따라야 한다.
=> 민주적 합의가 능사가 아니다. 만약 상대적 다수 집단이 소수 집단을 박해하는 법안을 제시하고 통과 시켰다면, 민주적 합의에 의해 제정된 법에 의거하여 그 박해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위 반박들을 다시 맞받아 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의견을 살펴보자.
5. 조던은 행운아다. 농구적인 재능을 가진 것도 행운이며, 농구적인 재능을 인정받는 시대와 사회에 태어난 것 또한 행운이다. 이는 본인의 성취 결과가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부의 전부 다 가질 자격이 있다고 말 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에 일부를 과세로써 가져갈 자격이 충분하다.
=> 조던의 재능은 정말 자신의 것인가를 묻는다. 재능을 연마하여 얻은 수익을 본인이 가질 자격이 없다면, 그 재능은 본인의 것이 아니게 되며, 이는 자기 자신을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본인을 자기 자신이 소유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나의 소유권을 정말 국가와 정부에게 넘기자는 이야기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소유하기 때문에 국가가 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주장이 옳다면 개인은 자의적, 자발적으로 개인의 신체 일부를 얼마든지 사고 팔 수 있어야 한다. 개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안락사가 허용되며, 식인 또한 합의 하에 이루어 진다면 문제 없는 행위이다.
국가가 마이클 조던에게 과세를 하는 행위가 부당하다면, 자발적인 마약 투약(혼자 제조하고 혼자 조용히 투약), 본인 자유의지에 의한 안락사, 상호 합의에 의한 식인 행위 또한 제재 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런 사회를 두고 정의로운 사회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국가와 정부에게는 사회 질서 유지와 공리를 위해 어느 정도는 개인의 권리를 초월할 자격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 범위와 공정성, 타당함을 판단하기 위함 역시 우리가 도덕적 고민을 지속적으로 해야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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