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기란 다소 어려운 일이다. 내가 가진 재화와 타인이 가진 재화를 필요에 의해 거래를 하며 살아가고 있고, 우리는 그 무대를 시장이라고 칭한다. 시장의 역할은 무엇이며 정부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까. 또 적절한 합의가 있다면, 모든 재화는 거래 유효 대상일까.
자유시장을 옹호하는 입장과 이에 회의적인 입장이 나뉘어지기 마련이다. 자유시장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은 두가지 관점의 주장을 근거한다. 하나는 자발적 교환이라면 그 형태가 어떠하든 인정을 해줘야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길이기 때문에 자유시장을 지지한다. 즉, 자유지상주의적인 색깔의 목소리이다. 또 하나는 공리주의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주장이다. 무릇 거래란 상호 필요에 의해 성사되는 것이며, 거래가 성사되었을 때 거래 당사자들은 거래를 통해 그것이 충족되기에 전체 공리가 높아진다.
시장에 회의적인 입장에서의 주장은 자유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거래가 설사 상호 합의 하에 이루어졌다고 해도, 늘 자유롭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특정 재화나 사회적 행위는 거래를 하였을 경우 타락하거나 질이 떨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징집과 고용
19세기 미국은 노예제 폐지와 함께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이때 미국 북부에서는 제비뽑기를 통한 징병제를 시행했고, 징집에 당첨된 대상자들 중 상류층에서는 최대 1500달러(당시의 가치로써는 큰 돈)를 지불하고 대신 군대에 끌려갈 대리인을 고용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례를 살펴본 우리는 이와 같은 제도에 불편한 이물감이 느껴진다.
오늘날 미국과 같은 나라들이 시행하는 모병제에서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입대를 자원한 군인들은 강제로 징집되는 것은 아니지만 높은 급여와 복리 후생 등의 이유로 민간인을 대신하여 군 복무를 수행한다. 그렇다면 어떠한 징집 방법이 가장 공정할까.
- 징병제
- 유급 대리인을 고용하는 징병제(남북전쟁)
- 시장체제(모병제)
자원군 옹호
자유지상주의자들은 징병제가 강제성을 띄는 일종의 노예제라며 이에 반대한다. 공리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징병제 반대의 이유는 선택권을 제한함으로써 전체 행복을 감소시킨다는 논지이다. 군인에게 필요한 자질과 적절한 급여를 책정하여 사람들에게 강요 없이 결정할 수 있게끔 내버려둔다. 자유로운 선택에 의해 입대를 할 수 있고, 군인으로서 취직을 하여 행복한 사람과 입대를 하지 않아 행복한 사람이 발생한다. 따라서 양쪽 진영 모두에게 모병제가 가장 합리적인 징집 형태일 것이다. 그 다음은 그나마 선택의 여지라도 있는 유급 대리인 고용이 허용되는 징병제 일 것이다. 언뜻보면 문제가 없는 주장 같아 보이지만 두 가지 반박에 부딪힌다.
공정성과 자유 제한적인 상황에서는 자유시장이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 제반 여건을 살펴봐야 한다. 시민들에게 균등한 기회가 적절히 주어졌는가? 입대를 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는 군 복무 외에 비싼 대학 등록금을 충당할 선택지가 없을 수도 있다. 유급 대리인이 허용되는 징병제의 경우를 살펴보자. 부자들은 대리인을 고용하여 징집을 회피하든, 징집에 응하든 최소 두 개의 선택지 내에서 선택 할 수 있다. 그러나 1500달러가 없는 사람들은 징집에 응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 몸을 파는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동남아에는 많은 여성들이 부모의 병원비와 부양을 이유로 거리에 나와 짧은 옷을 입고 본인을 상품화 한다(물론 물질적인 이유로 매춘에 종사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교육의 기회가 없어 최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군인이 되고 싶어도 지원조차 하지 못한다. |
첫 번째 반박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자유의 범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어느 범위까지가 자유이고 평등인지, 그 기준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시민의 미덕과 공동선 군 복무는 거래의 대상이 아닌 시민으로서 나라에 봉사할 의무이다. 돈을 주고 군인을 고용하여 국방의 의무를 의탁하는 행위는 용병에게 국방을 의뢰하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차라리 개발도상국의 싼 인건비 활용하여 용병에게 국방을 맡기는게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자국민은 국방비를 덜 부담해도 되고 전체의 공리가 높아진다. 또 자유의지에 의해 모병된 용병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힘들지 않은가. 하지만 이는 어딘가 꺼림칙하다.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용병과 자국 모병들에게는 결정적으로 애국심 유무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자유시장에 징집을 떠 맡긴 마당에 애국심이라는 시민의 미덕을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그리고 모병 군인들 중 애국심을 이유로 본래의 급여보다 더 적은 돈을 받고 복무를 하겠다는 군인은 없다. |
두번째 반박은 시민의 기본 의무에 대한 범위를 다룬다. 좋든 싫든 우리는 태어남과 동시에 자동적으로 특정 집단에 소속이 되고, 이후 소속과 연대의 책임이 생긴다.
출산에 대한 계약과 거래, 그리고 정부의 역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불임 부부가 있다. 이 부부는 임신을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고 결국 대리모를 고용하여 출산을 의탁하기로 했다. 부부는 계약 당시 대리모로부터 출산과 동시에 아이를 넘겨 받기로 했고, 산모는 어머니로서 친권을 포기. 이 댓가로 출산비용을 지급받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산모는 막상 출산을 하고보니 강력한 모성애가 작용을 하여 아이와 도저히 떨어질 수 없었다. 그녀는 아이를 넘기지 않고 아이와 함께 도망치기로 결심했다. 산모는 얼마가지 않아 경찰에 체포되었고 이들은 양육권 분쟁으로 인하여 법원에 서게 된다.
산모 측의 변호는 다음과 같았다. 산모가 계약 시에 가지고 있던 관련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다. 산모가 아이를 건네주기로 약속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애초에 돈이 궁해서 시작한 계약이었으며 아이를 건네줄 때 어떤 기분일지 예상하지 못했다. 대리모가 계약 당시 자발적인 동의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인" 자발적 동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두번째는 양쪽이 자발적 동의를 했더라도 아이를 사고 파는 행위는 옳지 않다.
1심 판결은 부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 이유는 양자가 거래를 할 당시 그 어느 쪽도 거래에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 쪽 모두 거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하지 않아서 기울어진 거래가 성사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는 본인의 친자식을 살 수 없다. 애초의 당신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약속했던 비용은 출산에 대한 서비스 비용이지, 아기 구매 비용으로 보기 힘들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산모는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법원에 상고를 하였고, 2심 판결은 1심의 판결을 뒤집는 결과를 낳았다.
2심의 판결 근거는 이렇다. 산모가 본인과 자식의 강력한 유대감을 알기도 전에 되돌릴 수 없는 약속을 한 것이다. 따라서 산모가 출산 전 행했던 계약은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친권을 포기하며 댓가를 지불받는 것은 어머니의 권리를 판매하는 행위이다. 이 거래에 영향을 미치고 궁극적으로 거래를 지배한 것은 "이익 추구"이다. 따라서 이 거래의 행위가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전쟁과 출산이라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주제이지만, 자유시장에 대입했을 때 공통된 도덕적 고민으로 귀결된다. 자유시장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거래란 무엇일까? 또 감히 거래라는 행위에 대상이 될 수 없는 가치란 존재할까?
자본주의 체제 국가의 시민 우리에게 포괄적인 의미에서 '돈'은 정말 중요하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돈이 있으면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고, 반대로 돈이 없어서 꼭 필요한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돈이 찬양을 받고 있지만, 돈이라면 정말 다 된다는 생각은 그릇되다는 생각을 논리적으로 잘 답변해준 섹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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