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대다수는 사회계약에 서명한 적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동의하지도 않은 법을 준수하고 있다. 최초에 법이 제정되던 때 역시도 사회에 불평등이 만연했겠지만,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는 법과 사회의 체계를 보며 부당함과 불평등을 느끼기 마련이다.
무지의 장막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는 공정한 사회계약이 이루어질 수 있는 한 가지 답을 내놓는다. 그 유명한 '무지의 장막' 사고 실험이다.
우리가 사회계약을 작성하기 위하여 모인 자리에 무지의 장막을 설치한다는 설정을 제시한다. 무지의 장막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제각기 이해관계,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도덕적, 성별, 인종 등의 모든 배경적인 요소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그야말로 협상에 있어서 원초적으로 평등한 상태. 이러한 장막에 가려져 본인의 소속이 소수집단인지 다수집단인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권리를 희생해가며 다수에 득이 될 수 있는 공리주의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박해 받을 위치일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함에 결코 사람들은 공리주의를 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부유층일지 빈곤층일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최소국가를 이상으로 삼는 완전자유주의 역시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추론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첫째, 시민들에게 있어서 사회적 공리보다 개인의 기본 자유가 우선시 된다. 둘째는 사회적, 경제적 평등과 관련된 원칙이다. 롤스는 부의 완전한 재분배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사회집단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하위 계층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약의 도덕적 한계
일반적으로 계약 시에 상호합의의 조건이 공정하리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계약은 도덕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아니다. 불공정 계약이라던지 독소조항 같은 이야기들은 이미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양쪽이 정한 계약의 조건에 불공정함을 발견했다고 해서 마음껏 계약을 파기해서도 안된다. 어느정도 이행은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합의가 필요한 계약이 있고, 합의가 없었더라도 성립되는 계약도 때때로 있기 마련이다.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
요즘 세상에는 봉건주의 사회나 카스트 제도 따위를 옹호할 사람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제도들은 노력의 결과가 아닌 출생이라는 우연적인 요소가 소위 운명을 정하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시장사회는 능력있는 자에게 일을 주고, 법으로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임의성을 교정한다. 그러나 시장사회를 살아가고있는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매사가 앞에 말처럼 작용하지는 않는다. 모두에게 참가할 자격이 주어졌다한들, 각자의 출발선이 각자 다르다면, 그것을 두고 공정하다 말 할 수 없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유시장 사회에서 기회 균등이 보장되었다고 해서 분배 정의가 실현된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평등함을 해소하는 방법은 사회 약자 계층들이 겪고 있는 사회적, 경제적, 제도적 불이익을 교정하는 것이다. '능력 위주'에 걸맞는 자유시장의 공정함이 실현되려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도 임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 등으로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도 재능에 따라 능력 발휘의 시기와 질이 다르다. 타고나는 재능 또한 그 말대로 타고나는 것이기 때문에 우연성을 띈 불공정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존 롤스는 신분제나 능력 위주 사회에 만연한 오점들을 인정한다면 평등주의를 더욱 강조하는 개념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것에도 만족할 수 없다고 했다.
평등주의 악몽
커트 보네거트의 <해리슨 버거론>이라는 SF 단편에서 평등주의의 맹점을 엿볼 수 있다.
마침내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지는 시대가 도래했다.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거나, 잘생기거나, 강하거나 하지 않았다. 행여 남들보다 잘나게 태어난다고 해도, 정부의 평등관리기관의 관리 하에 남들보다 잘나지 않도록 철두철미한 관리대상이 된다. 남들보다 높은 지능을 가진 자는 수신기를 통해 정신장애를 일으키는 전파를 지속적으로 수신받았고, 외모가 뛰어난 자들은 억지로 못생기게끔 꾸미고 다녀야 했고, 외모를 영구히 후퇴 시킬 교정 장치를 착용하고 다녔다.
평등주의에 반박하는 사람들은 해리슨 버거론의 케이스와 같은 우려를 안는다. 그들은 평등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열등함이 기준이 되어 모두가 그것에 정렬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롤스가 고안한 평등 실현 방안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것은 차등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재능있는 이에게 패널티가 아니라 독려를 하여 그 재능을 더욱 개발하게끔 지원하고, 발현된 재능으로 거두어드린 댓가를 공동체에게 분배하는 식이다. 롤스는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때에만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함을 인정한다.
롤스가 주장한 원초적 위치 논리(무지의 장막)와 도덕적 임의성 배제 논리는 두 가지의 공통점을 띈다. 정의의 원칙을 생각할 때, 개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우연적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롤스가 주장한 차등원칙은 두 가지 반박에 부딪힌다.
격려금 만약 재능있는 사람들이 차등원칙에 거부하여 가진 재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고세율에 불만을 품고, 본인이 재능으로써 발휘한 노동의 질에 응당한 댓가를 지불받지 못한다고 느껴서 가진 재능을 발휘하지 않는다면 해리슨 버거론 이야기와 결을 같이한다. 롤스의 차등원칙도 고소득층에게 격려 차원의 보상금으로 인한 소득 불균형을 인정한다. 다만 격려로 인해 저소득층에게 낙수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소득의 불균형이 허용되는 오직 한 가지 이유는, 재능있는 자의 능력과 그 산출물을 누릴 자격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그에게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동기를 유발시키기 위함임을 알 수 있다. |
노력 두번째로는 노력으로 능력을 얻은 경우이다. 별다른 노력 없이 선천적으로 재능이 있는 경우도 있는 반면, 노력을 통해서 능력을 길러낸 대기만성의 경우도 있다. 혹은 재능도 타고 나고 피나는 노력으로 그 재능을 갈고 닦은 경우도 있겠다. 롤스는 노력 또한 우연이 개입 되어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흔히들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을한다. 노력을 하는 것을 가능케한 가정의 경제적 환경, 교육, 노력을 하는 유전자 등 역시 어쩌면 타고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롤스는 이러한 이유를 들어 노력 역시도 유전적, 환경적인 도덕적 임의성이 포함된다고 한다. |
도덕적 자격 거부하기
도덕적 임의성을 쫓다보면 분배 정의는 도덕적 자격에 포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능력 위주의 현 사회에서 도덕적 자격은 능력이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게 되고, 그 능력 역시 재능과 노력을 통하여 얻은 것이므로, 이는 도덕적 임의성과 연결된다. 그렇기 때문에 롤스는 분배 정의를 도덕적 자격에 포상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규칙 테두리 내에서 열심히 일한 사람들은 노력의 댓가를 요구할 수 없을까?
롤스는 합법적 권리와 도덕적 자격을 분리한다. 노동자들에게는 노동의 댓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 자격이 주어져서가 아니다. 얼핏 보면 권리와 자격은 비슷하지만, 그 속에 미묘한 차이를 잘 구분해야한다. 도박사들이 바카라와 같은 확률 도박에 이겨서 돈을 땄다고 했을때, 그들은 배당금을 가질 권리가 있는 것이지, 그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UFC 같은 투기 종목에서 스테로이드 성 약물을 사용하여 승리했다고 하자. 약물을 사용하고 승리를 도둑질한 승자는 도핑 테스트에서 적발되지 않고 넘어갔다. 그는 약물 사용에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승리에 대한 권리는 누리겠지만, 그가 취한 승리를 두고 자격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이처럼 미덕과 실력이 개입되는 게임에서는 권리와 자격을 누리는 주체가 종종 다를 수 있다.
삶은 불공평한가?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은 자유방임 원칙을 주장했다. 그는 삶이 불공평함을 인정하고 롤스가 이야기 했던 도덕적 임의성이 불공평을 야기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프리드먼은 사회가 그런 불공평을 수정하려 들기 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어 불공평과 더불어 사는 법을 터득하기를 권장했다. 평등이라는 추상적인 이상을 추구하기 보다는 불가항적인 세상에 발맞추어 살고, 현실적인 전략을 짜는 것이 지혜롭다는 주장이다. 롤스는 이러한 견해를 거부한다.
현실과 타협하여 부당함을 묵인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태도와 동일 취급하는 의견들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애초에 공정하지도 불공정하지도 않다. 어떤 환경에서 출발을 하던지 역시 부당하지 않다. 그것은 단지 타고나는 요소일 뿐, 공정과 불공정은 제도가 그러한 요소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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