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본 인권의 개념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인 이상 그 누구든, 집단의 행복을 위한 도구로써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널리 믿는다. 즉 개인은 타인의 행복을 위해 "이용"되어서 안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자기 자신을 소유하는 것은 본인이기 때문.이라는 '자기 소유'를 그 이유로 들기에는 다소 바람직한 근거가 아닐지 모르겠다. 문제가 되는 사유는 앞서 3장에서 살펴보았다. 이마누엘 칸트는 개인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쳤다. 그의 철학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 인권의 기반이 되었다.
칸트의 권리 옹호
칸트는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의 존엄성이 자유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였다. 동시에 그는 공리주의적인 사고와 미덕을 장려하는 사고를 거부한다. 그것들이 자유를 막아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자유란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예를 들자면 먹고싶은 것을 사먹고, 자고 싶은면 자는 등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칸트는 이러한 현상들을 두고 자유로운 것이 아닌, 오히려 욕구에 지배당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칸트의 주장에 따르자면 도덕은 사람들이 특정 시기에 드러내는 욕구, 바람, 기호와 같은 경험적 요소에만 좌우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가변적이고 우연적이기 때문에 보편적 도덕 원칙이 될 수 없다. 순수 실천 이성만이 그가 말하는 최고 도덕 원칙에 도달할 수 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자유롭게 행동하는 능력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과 이성적인 모든 존재는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칸트는 인간이 늘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자율적 선택을 하지는 않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에게는 매순간 그리하지 못하더라도, 그리할 능력이 있으며, 이와 같은 이유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믿음의 이유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칸트가 말하는 자유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유와는 다르다. 인간 이외의 동물들처럼 쾌락이나 고통 회피를 추구하는 것은 욕구에 사로잡혀 이를 충족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지, 그것이 진정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칸트에 따르면,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천성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서가 아닌,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법칙을 세울 기준으로는 우리(인간)이외의 다른 것들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목적의 끝에는 인간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법칙들에게 부여해야할 도덕적 가치는 무엇일까.
도덕이란 무엇인가? 동기를 찾아라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동의 도덕적 가치는 그 결과가 아닌 동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옳은 일을 하는 것이며, 그 이유가 단순히 옳기 때문이라야지, 이면에 숨은 동기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는 이를 두고 의무 동기라고 칭했고, 의무 동기 외의 욕구, 기호, 이익 등을 추구하기 위한 동기는 끌림 동기라고 하였다. 의무 동기에 의하여 어떠한 행동을 했느냐 만이 도덕적 가치를 매기는 기준이 될 뿐, 결과가 어떠하든 그에게 중요치 않다.
가령 봉사 활동을 하는 학생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봉사 활동을 하는 행동을 칭찬 받아 마땅하다(일반적으로는). 그러나 봉사 활동의 동기가 단지 스펙이나 점수를 위한 것이라면, 그 동기는 옳지 않다. 보다 불우한 사람을 위해 진정으로 봉사를 하는 마음만이 봉사 활동의 옳바른 동기이고, 도덕적으로 가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도덕적 주장이 그러하듯 결코 단순하게 받아드릴 수 없는 상황 또한 존재한다.
목숨 보전하기 사람은 대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기 마련이다. 생존이 의무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칸트는 여기서 의무 동기가 나타나는 예를 제시한다. 삶의 의지가 없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은 살고 싶은 욕구가 즉, 삶에 대한 끌림 동기가 없는 상황이다. 삶의 의지가 없는 그가, 의무감에 의해 삶을 보존하려는 의지를 가졌을 때, 그의 행동에서 도덕적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칸트는 그렇다고 자살을 하고 싶은 사람만이 목숨을 보존하는 의무를 다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삶 사랑하는 사람들도 삶을 보존해야 하는 의무를 인식하고 살아간다면, 삶을 보존하는 행위의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
도덕적인 인간 혐오자 세상에는 이타적인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타인에게 동정을 느끼고 불우한 사람을 도왔을 때 쾌락을 느낀다. 칸트는 동정심에서 나온 선행이 그 행동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도덕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동정심을 해소하고자하는 끌림 동기에 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타주의자의 동정이 작용해 움직인 선행은 칭찬과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존중 받을 수는 없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타인에게 행한 선행으로 존중을 받기 위한 조건은 인간을 혐오하지만, 순전히 의무감에서 타인을 도운 경우에 비로소 도덕적 가치를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만약 남을 도왔을 때 느끼는 쾌락이 선행의 동기라면, 그 선행의 도덕적 가치는 떨어진다. 하지만 타인을 도와야 할 의무를 의식하고, 그에 따라서 행동한 것이라면, 과정에 쾌락을 느낀다고 해도 도덕적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도이다. |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인가?
칸트는 개인의 권리가 지켜지는 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라고 말했다. 권리는 자유로움에서 나온다. 그리고 자유롭다는 것은 내가 정한 법칙에 의거하여 행동할 수 있을 때를 일컫는다. 또 행동의 법칙을 정할 때는 행동의 동기가 중요하다고 한다. 의무감에 의한 동기가 도덕적인것이라 한다면, 그 도덕의 최고 원칙은 무엇일까? 의무의 필수 조건을 밝힌다면 그것을 추론할 수 있다.
칸트는 세 가지의 중요한 개념인 '도덕, 자유, 이성' 을 두고 각각 대조하여 설명했다.
- 도덕) 의무 : 끌림
- 자유) 자율 : 타율
- 이성) 정언명령 : 가언명령
첫번째와 두번째는 앞서 살펴 보았다. 세번째 개념은 물리법칙이나 자연법칙에 의해서가 아닌, 인간이 자유에 의해 자율적인 행동을 할 때는 도덕적으로 행동하여야 하며, 도덕적 가치를 지닌 행동 법칙을 정할 때 개입되어야 할 "이성"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우리는 쾌락 혹은 고통에만 지배되어 움직이는 감각적 존재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다. 이성이 우리의 의지를 지배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우리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정언명령 대 가언명령
칸트는 이성이 의지에 명령하는 두 가지 방법을 구별한다. 하나는 가언명령이다. 가언명령은 이성을 도구로써 활용한다. "X를 원한다면 Y를 하라"는 식이다. 예컨대 스펙을 쌓으려면 봉사활동을 하라는 식의 명령이다. 이처럼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써 이성이 의지를 움직인다면 가언명령이다. 하지만 어떤 행동이 조건없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그 때의 이성을 가지고 의지에 불어넣는다면 그것은 정언명령이다. 칸트는 정언명령에 대한 몇 가지 형태의 공식을 제시한다.
- 행동준칙을 보편화하라
행동준칙에 따라 행동하되, 이는 보편적 법칙이 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보편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법칙을 세우고, 어느 상황에서나 모순없이 그에 따라 행동하라는 뜻이다.
-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
사람은 상대적 가치를 지닐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절대적이며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다. 모든 이성적 존재에게는 존엄성이 있다. 따라서 존엄성이 있는 인간을 대할 때에는 끝에 목적이 있어야하지, 특정한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수단으로써 인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칸트에 대한 의문
칸트의 도덕철학에 가지는 대표적인 의문이다.
칸트는 의무에 답하는 것과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동일시 하는 것 같다. 의무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은 법칙을 지킨다는 뜻이다. 법칙에 복종하는 것이 어떻게 자유와 양립할 수 있는 주장인가? => 의무와 자율은 '반드시 지켜야하는 법칙'을 나 스스로 정했을 때에만 양립한다.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나 자신이 그 법을 정하고, 바로 그 이유로 법에 종속되는데에 있다. |
자율이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면, 모든 사람이 똑같은 도덕법을 선택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정언명령이 내 의지의 산물이라면, 사람마다 정언명령이 다르지 않겠는가? => 도덕법을 선택할 때 특정 개인으로서 선택하는 것이 아닌, '순수 실천 이성' 이라 부른 것에 참여하는 존재로서 선택해야 한다.순수 실천 이성을 발휘한다면 특정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누구나 똑같은 결론에 이를 것이다. |
섹스, 거짓말, 그리고 정치
- 자유로운 성관계에 반대하는 칸트
칸트는 성도덕에 있어서 보수적이다. 그는 부부 사이에서 성관계 이외의 모든 성적 행위를 반대한다. 서로의 인간성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서로를 서로의 성욕을 해갈하는 도구로써 취급하기 때문이다. 매춘 등의 행위 역시 비슷한 이유로 반대했다. 위의 내용들을 이해했다면, 이러한 칸트의 견해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렵지 않다.
- 살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행위는 잘못인가?
칸트는 그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거짓말은 도덕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거짓말은 부도덕한 행위 중 으뜸으로 꼽힌다. 거짓말의 상대가 내 친구를 죽이려고 드는 살인자라고 해도 말이다.
만약 친구가 쫓아오는 살인자를 피해 우리집으로 숨어 들었고, 살인자가 문 앞에 와서 친구가 어디있냐고 물었을 때에도 칸트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그 까닭은 살인자에게 거짓을 고하는 행위가 살인자에게 해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진실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보편적인 도덕 원칙은 살인자를 상대로도 예외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칸트의 입장이다. 단, 이럴경우 칸트라면 진실의 일부만을 이야기하여 살인자에게 혼동을 주는 식으로 이 상황을 타개할 것이다.
칸트는 본국의 왕과 껄끄러운 관계에 놓였었다. 왕은 종교에 관한 칸트의 글을 읽고, 그가 본인의 종교를 모독한다고 판단하여 그 주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칸트에게 요구했다. 칸트는 "소인의 폐하의 충직한 백성으로서, 앞으로 종교에 관한 강의를 삼가고 논문을 쓰지 않겠습니다." 라며 대답했다. 그는 왕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몇 년 뒤, 왕이 죽자 칸트는 약속에서 풀려났다고 생각했다. '폐하의 충직한 백성'이라고 이야기 했지, 본인의 평생동안 충직할 것이라는 언급은 안했기 때문이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이런식의 말 장난은 오늘날의 정치와 법정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그는 그의 진실 원칙을 지켜냈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샌델은 책에서 칸트의 철학은 까다롭고 어렵다는 우려를 몇 번이나 언급한다. 나 또한 이 책을 읽는 동안 가장 안 읽히고 이해하는데 어려운 섹션이었다. 조금은 고지식한면이 있는 철학일지도 모르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보편적인 인권 개념의 기반이 되는 이야기라서 상당 부분 동의를 하며 공감을 했다. 또 그의 철학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생각치 못했던 '자유'에 대해 사려해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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